같은 조항이라도 누가 요구하느냐가 다르다
엔젤, 벤처캐피털, 기관투자자는 요구하는 조항의 조합이 다릅니다. 투자자 유형별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중 창업자에게 불리한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투자 계약 조항을 하나씩 배우고 나면 다음 단계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조항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여기에 일률적인 답은 없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항이라도 누가 요구하는지에 따라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유형별로 무엇을 왜 요구하는지 알면 협상 자리에서 판단이 훨씬 빨라집니다.
유형별로 요구하는 조항의 조합
실무에서 보는 일반적인 경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조항 | 엔젤·개인투자자 | 벤처캐피털 | 기관투자자 | 창업자에게 |
|---|---|---|---|---|
| 희석방지 | 요구 | 요구 | 요구 | 조건에 따라 다름 |
| 창업자 락업 | 요구 | 요구 | 요구 | 중립 |
| 우선매수권 | 요구 | 요구 | 요구 | 중립 (보호 겸함) |
| 이사 선임권 | 드묾 | 요구 | 요구 | 중립 |
| 동반매도권(Tag) | 요구 | 요구 | 요구 | 중립 |
| 매도요구권(Drag) | 드묾 | 요구 | 요구 | 불리 |
| 풋백 옵션 | 요구 | 요구 | 요구 | 조건에 따라 다름 |
이 표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경향입니다. 개별 투자자의 성향과 펀드의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표에서 읽어야 할 것
대부분의 조항은 유형과 무관하게 들어갑니다. 락업, 우선매수권, 동반매도권은 거의 표준에 가깝습니다. 이런 조항을 두고 "왜 이런 게 있냐"고 다투면 협상 시간만 소모됩니다. 오히려 표준 조항은 빠르게 넘기고, 차이가 나는 항목에 시간을 쓰는 편이 낫습니다.
차이가 나는 항목은 두 개입니다. 이사 선임권과 매도요구권입니다. 둘 다 개인투자자 단계에서는 잘 나오지 않다가 기관 자금이 들어오면서 등장합니다.
창업자에게 명백히 불리한 것은 매도요구권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조건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거나 중립입니다. 협상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왜 유형에 따라 달라지는가
엔젤·개인투자자는 대체로 팀과 아이디어를 보고 들어옵니다. 금액이 크지 않고 회수 압박도 상대적으로 느슨합니다. 이사회에 들어와 경영을 들여다볼 인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구하는 조항이 단순합니다.
벤처캐피털은 펀드를 운용합니다. 출자자에게 정해진 기간 안에 성과를 돌려줘야 하므로 회수 경로를 확보하는 조항이 붙습니다. 이사 선임권으로 정보를 받고, 매도요구권으로 회수 시점의 선택지를 확보합니다.
기관투자자는 여기에 내부 심사와 컴플라이언스 요건이 더해집니다. 개별 담당자가 유연하게 판단하고 싶어도 내부 규정상 빼기 어려운 조항이 있습니다. 협상 상대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협상에서 쓸 수 있는 관점
조항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이 협상은 아닙니다. 실무에서 더 자주 통하는 방식은 범위를 좁히는 것입니다.
- 매도요구권을 없애는 대신 발동 요건을 높입니다. 최소 매각 금액을 정하고, 창업자에게 우선매수 기회를 주는 조항을 함께 넣습니다.
- 동의사항을 줄이는 대신 금액 기준선을 올립니다. 일상적인 계약이 걸리지 않는 수준으로 조정합니다.
- 이사 선임권을 막는 대신 이사회 정원을 조정합니다. 창업자 측이 과반을 유지하면 의석 하나는 정보 공유 통로로 작동합니다.
없애기 어려운 조항이라도 작동 조건은 대개 협상 가능합니다. 각 조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고 있으면, 투자자가 원하는 목적은 지켜주면서 창업자가 걱정하는 상황만 걸러내는 문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라운드가 쌓이면 조항도 쌓입니다
한 가지 더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항은 라운드마다 새로 붙습니다. 시리즈 A의 조항 위에 시리즈 B의 조항이 얹히고, 각 투자자가 각각의 동의권을 갖습니다.
동의를 받아야 할 상대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비용입니다. 초기 라운드에서 무심코 넘긴 조항이 나중에 열 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구조로 자라기도 합니다. 지금 계약이 앞으로의 계약에 선례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점검 목록
- 이번 계약의 조항이 투자자 유형에 비추어 통상적인 범위인가
- 표준적이지 않은 조항이 있다면 그 이유를 물어봤는가
- 매도요구권의 발동 요건을 확인했는가
- 조항을 없애는 대신 범위를 좁히는 안을 준비했는가
- 기존 라운드 투자자들의 동의권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가
- 이 계약이 다음 라운드의 선례가 되어도 괜찮은가
투자 조건을 볼 때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밸류에이션만 비교하는 것입니다. 조항은 문장으로 오기 때문에 비교가 어렵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숫자만 보게 됩니다.
같은 표에 놓고 비교하려면 조항이 무엇을 하는 장치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작업이 끝나면 어느 제안이 실제로 나은지가 대체로 분명해집니다.
개별 조항의 해석과 협상 전략은 사안마다 다르므로 변호사의 검토를 함께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