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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받은 다음에 무너지는 회사들

투자 유치는 목표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고정비, 성과 관리, 자금 관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 문제를 정리했습니다.

투자 유치에 성공한 다음 날부터 회사의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돈이 들어왔으니 쉬워질 것 같지만 반대입니다. 이제는 약속한 성과를 정해진 기간 안에 만들어야 하고, 그 과정을 주주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유치 전에는 없던 종류의 부담입니다.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문제는 네 가지입니다.

1. 고정비가 먼저 늘어난다

투자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채용입니다. 그동안 사람이 없어 못 했던 일이 쌓여 있으니 자연스러운 판단입니다.

문제는 인건비가 고정비라는 점입니다. 한 번 늘리면 되돌리기 어렵고, 되돌리는 과정은 회사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반면 매출은 채용한 다음 달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새로 온 사람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이런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투자 직후    자금 넉넉함  →  대규모 채용
3개월 후     고정비 2배   →  매출은 그대로
9개월 후     자금 소진 가속  →  예정보다 빨리 다음 라운드 필요

소진 속도가 빨라지면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준비할 시간이 없는 상태의 투자 유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투자 유치는 돈이 필요한 시점의 6개월 전에 시작한다에서 다뤘습니다.

채용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채용 시점을 마일스톤과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표가 어디까지 올라가면 몇 명을 더 뽑는다는 식으로 조건을 미리 정해두면, 자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이 부풀지 않습니다.

2. 마일스톤 없이 다음 라운드로 간다

투자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자금입니다. 이번 라운드 기간에 무언가를 증명해야 그것을 근거로 다음 라운드를 받습니다.

그런데 증명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이 떨어져 다시 투자자를 만나면 두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 투자를 받지 못한다
  • 받더라도 기대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두 번째가 더 자주 일어나고 더 나쁩니다. 이전 라운드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자를 받으면 희석방지 조항이 작동해 기존 투자자의 지분이 늘어나고, 창업자 지분은 그만큼 더 줄어듭니다. 조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투자자 보호조항 ① RCPS와 희석방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걸 막는 방법은 투자 유치 시점에 이번 라운드의 증명 목표를 명확히 정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정해져 있으면 자금 집행의 우선순위도 자동으로 정해집니다.

3. 투자금을 기존 계좌에 섞는다

기본적인 것이지만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금은 별도 계좌로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는 셋입니다.

  •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추적이 쉬워집니다
  • 주주에게 보고할 때 근거를 바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 계약상 자금 용도 제한이 있는 경우 위반 소지를 줄입니다

기존 운영 계좌에 섞이면 나중에 정리하는 데 시간이 훨씬 많이 듭니다. 특히 정부지원금까지 함께 받고 있다면 자금별로 집행 규칙이 달라서 사후에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4. 계약서에 적힌 목적 외로 쓴다

투자 계약서에는 대개 자금의 사용 목적이 적혀 있습니다. 연구개발, 인력 채용, 마케팅처럼 항목이 명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시된 목적 외로 자금을 쓰면 계약 위반이 됩니다. 회사가 잘 굴러가는 동안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다가, 관계가 나빠지거나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투자자가 쥐고 있는 카드가 됩니다.

사업 환경이 바뀌어 다른 곳에 써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는 임의로 집행하지 말고 투자자와 먼저 논의해 변경 합의를 남겨두는 것이 맞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동의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에 발견되는 경우입니다.

투자 직후 점검 목록

  • 채용 계획이 마일스톤과 연결되어 있는가
  • 채용 후 월 소진 속도가 얼마가 되는지 계산했는가
  • 이번 라운드에서 증명할 지표가 무엇인지 문서로 정해져 있는가
  • 그 지표를 기준으로 자금 집행 우선순위가 정해졌는가
  • 투자금 전용 계좌를 만들었는가
  • 계약서에 명시된 자금 용도를 팀 내에서 공유했는가
  • 주주 보고 주기와 형식을 정했는가

마지막 항목도 미리 정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보고가 늦어지거나 형식이 매번 달라지면 주주 입장에서 불안 신호로 읽힙니다. 정기적으로 같은 형식의 자료가 오면 그 자체가 신뢰가 됩니다.


투자 유치는 목표가 아니라 시계를 다시 맞추는 일입니다. 통장에 들어온 금액만큼 시간이 생겼고, 그 시간 안에 다음 단계로 갈 근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쓸지 먼저 정해두지 않으면, 자금은 줄어드는데 증명은 쌓이지 않은 상태로 다시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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