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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보호조항 ① RCPS와 희석방지, 어디까지가 정상인가

상환권과 전환권이 무엇을 보장하는지, 희석방지 조항이 언제 보호장치이고 언제 독소조항이 되는지 경계선을 정리했습니다.

투자 계약서를 처음 받으면 낯선 조항이 줄줄이 나옵니다. 대부분 투자자 보호조항이라고 불리는 것들인데, 이름 때문에 오해가 생깁니다. 투자자만 보호하는 장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창업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겸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핵심은 조항의 이름이 아니라 세부 문구입니다. 같은 이름의 조항이라도 한 줄 차이로 정상적인 보호장치가 되기도 하고 독소조항이 되기도 합니다. 판단 기준은 하나로 요약됩니다.

그 조항 때문에 앞으로 창업자의 선택이 제한되는가.

대부분의 투자는 우선주로 들어옵니다

초기 기업 투자에서 가장 자주 보는 형태가 상환전환우선주(RCPS, Redeemable Convertible Preference Shares) 입니다. 이름 그대로 상환권과 전환권이 함께 붙은 우선주입니다.

상환권(Redemption Rights) 은 투자금을 회사에 되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회사가 잘 굴러가는데 상장도 하지 않고 매각도 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회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를 대비한 장치입니다. 보통 투자원금에 일정 이율을 복리로 적용한 금액을 청구합니다.

여기서 확인할 것은 이율과 상환 청구 시점입니다. 이율이 높고 청구 가능 시점이 이르면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오르기 전에 현금 유출 압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전환권(Conversion Rights) 은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입니다. 회사가 잘되면 우선주 지위를 버리고 보통주로 전환해 지분 가치를 그대로 누리겠다는 뜻입니다.

전환권에서 볼 것은 전환 비율의 조정 조건입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같은 실적 지표에 따라 전환 비율을 다시 정하는 조항(리픽싱)이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표를 못 채우면 같은 투자금으로 더 많은 보통주를 받게 되므로, 기존 주주의 지분이 그만큼 더 희석됩니다.

희석방지 조항의 두 얼굴

Anti-dilution(희석방지) 은 이번 투자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추가 투자를 받을 때 기존 투자자를 보호하는 조항입니다. 보통 두 가지가 함께 붙습니다.

  1. 투자단가 이하로 추가 투자를 받으려면 기존 투자자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
  2. 동의 후에는 기존 투자자의 투자단가도 신규 투자자와 같은 수준으로 하향 조정된다

두 번째 항목은 기존 투자자의 지분율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그만큼 창업자 지분이 줄어듭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조건입니다. 문제는 첫 번째 항목의 범위입니다. 투자단가 이상으로 받을 때도 동의가 필요하도록 되어 있다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회사가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으려 해도 기존 투자자가 반대하면 못 받게 됩니다.

지분 5%를 가진 투자자가 회사 전체의 자금 조달을 막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창업자를 지키기도 합니다

희석방지 조항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회사가 자금이 급해지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때 기존 기관투자자의 동의 절차가 한 번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이미 이 회사에 돈을 넣은 투자자는 회사가 헐값에 지분을 넘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같은 조항이라도 누가 요구하는지에 따라 실질이 달라집니다. 장기적으로 함께 갈 기관투자자가 요구하는 동의권과, 단기 회수만 보는 투자자가 요구하는 동의권은 발동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스톡옵션 풀을 어디서 만드는지도 봅니다

투자 계약에서 자주 함께 논의되는 것이 스톡옵션 풀입니다. 문제는 그 풀을 투자 전에 만드는지 후에 만드는지입니다.

투자 전에 만들면 그 희석은 기존 주주만 부담합니다. 창업자 80%·투자자 20% 구조에서 10%의 옵션 풀을 투자 전 기준으로 만들면, 창업자 지분이 70%로 내려가고 투자자는 20%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투자 후에 만들면 창업자와 투자자가 지분율대로 함께 부담합니다. 같은 10%인데 누가 내는지가 달라집니다. 텀시트를 볼 때 이 부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관련 내용은 텀시트를 처음 받았을 때 확인할 것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확인 목록

  • 상환권의 이율과 청구 가능 시점이 언제인가
  • 전환 비율을 조정하는 조건이 붙어 있는가, 그 기준 지표는 무엇인가
  • 희석방지 조항이 투자단가 이하에만 적용되는가, 이상에도 적용되는가
  • 희석방지 조정 방식이 어떤 형태인가
  • 스톡옵션 풀을 투자 전에 만드는가 후에 만드는가
  • 각 조항을 요구하는 투자자가 장기로 함께 갈 성격인가

투자자 보호조항과 독소조항은 한 끗 차이이고, 그 한 끗은 대개 세부 문구에 있습니다. 조항 목록만 훑고 "이 정도는 다 들어가는 거죠"라고 넘어가면 그 한 끗을 놓칩니다.

계약 조항의 해석은 사안마다 다르므로 서명 전에 변호사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투자유치RCPS계약자본구조